‘순례 주택’ 감상평, 작가: 유은실
이런 류의 소설은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니 시간 순삭, 몰입하여 한 번에 읽게 된 소설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삶의 양상과 문제점을 재미있게 풀어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인물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서 힐링을 얻었던 작품이다.
삶에 부대끼고 너무 힘이 들 때가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나? 나의 잘못이 아닌데,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로 인해 내가 독박 쓰는 기분, 세상 억울한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 소설의 인물들도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인물과 남에게 피를 주는 인물들로 대립될 수 있는데,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인물들에게 욕도 나오지만 남에게 피를 주는 인물들의 넓고 포근한 마음과 삶의 바라보는 가치관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나도 힘들지만 순례주택 사람들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용기를 얻는다.
순례 주택의 인물들은 순례 주택 거주자와 1군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순례 주택 거주자>
1. 오수림
서술자이자 주인공이다. 거북중 3학년에 재학중.
주소는 원더 그랜디움에 있지만 마음은 순례 주택에 있다. 태어나서 엄마의 건강 상태 때문에 외할아버지댁에 보내졌는데, 외할아버지가 애인 순례 씨 집에 데리고 왔고 순례 씨가 거의 키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가족과 합류하게 되었다.
2. 김순례
건물주이고 이 소설 제목 ‘순례 주택’의 그 ‘순례’이다. 402호 거주, 75세.
스물에 결혼하여 서른다섯에 이혼,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은 캐나다에서 슈퍼마켓 운영하고 있다.
*순례 씨의 가치관: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에서 오수림은 김순례를 ‘순례 씨’라고 부름.)
따라서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은 순례 씨의 가치관에 안 맞는다. 순례 주택은 순례 씨가 남편과 이혼하고 세신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45살에 순례 주택을 구입하였다. 나중에 지하철역이 들어서면서 집값이 올라가고 마당의 일부를 국가에 내어주고 보상금을 받았다.
순례 씨는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시세에 따라 받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받는다. 따라서 순례주택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순례주택에 들어오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
3. 302호
홍길동 씨 부부가 거주, 홍길동은 가명, 본명은 이군자.
요양보호사 필기시험에서 홍길동이라고 써서 홍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다들 그렇게 부른다. 김치를 잘해서 옥탑방 공용 공간에 항상 김치를 가져다 놓는다.
4. 202호
조은영 미용실. 어린 남매를 데리고 순례 주택에 들어와서 방 하나는 보증금 없이 살다가 돈을 벌어 갚았다. 순례 주택이 있는 거북마을 사람들에게 미용실 이용료를 20% 할인해준다.
5. 401호: 영선 씨
6. 301호: 허성우 박사, 오수림의 아버지와 대학 동문이다. 박사지만 티를 내지 않고 새벽 배송, 청소 등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성실한 사람이다.
7. 201호: 고 박승갑 씨가 거주했다. 순례 씨 연인이자 오수림의 외할아버지이다.
<1군들>
1군들
주인공 오수림의 가족인 엄마, 아빠, 언니 오미림, 오수림은 자신은 거기에 끼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1군이라고 부른다.
1군들은 원더 그랜디움에 살고 있다. 그 아파트는 외할아버지집이었으나 엄마, 아빠가 결혼하면서 얹혀살다가 외할아버지가 불편해서 나가버렸다. 엄마 아빠는 아파트를 유지비, 오미림의 학원비, 기타 생활비를 외할아버지에게 받아 썼는데 액수를 따져보니 총 4억이 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태양광 사기를 당하여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빚만 지게 되었다. 그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1군들은 아파트에서 나가게 되었고 순례 씨의 배려로 순례 주택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1. 오미림
주인공의 한 살 터울 언니, 거북고 1학년.
사과와 배를 깎을 줄 모루고, 라면을 끓일 줄 모른다.
중학교에서는 종종 전교 1등도 했으나 외고 입시에 떨어졌다. 자기밖에 모른다.
날마다 드라이클리닝 냄새가 가시지 않은 옷을 입고 BMW mini를 타고 출근하는 것이 꿈이다. 집이 망했는데도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옷을 입어야 하고 학원비가 밀렸는데도 계속 다니다. 집이 망한 것에 한탄만 하면서 남 탓만 할 뿐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나약한 인물이다.
2. 엄마
43세, 전업주부, 스스로 현모양처?를 실천하는 사람.
남편 뒷바라지, 오미림 뒷바라지, 집안을 엄청 깨끗이 유지한다. (오미림과 아빠는 자기 손으로 먹은 그릇 하나 안 치운다.)
대학원을 졸업했고, 원더그랜디움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거북마을 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빌라촌이라 무시한다.
자기 가족애는 엄청 강하지만 남에게는 막말한다.
고학력에 대한 자부심만 있을 뿐 돈 벌 줄 모른다.
3. 아빠
47세 시간 강사, 전임교수를 꿈꾸지만 15년째 임용이 안 되고 있다.
엄마, 아빠는 대학원에서 만나서 결혼했고 학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학벌이 낮은 사람을 무시하고 남들에게 학번을 물어봄으로써 자신들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옛날로 말하면 양반인 체하면서 허세만 부리고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노동하는 일을 무시하는 사람.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 실속 없는 사람들, 집안이 망했어도 실질적으로 돈을 벌 궁리는 안 하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한다. (살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은근 많더라!)
1군들은 집이 망했는데도 아직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계지원이라도 받으라고 하니까 남의 눈치 보느라, 창피해서 그것도 못 한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남에겐 막말을 하는 남 보기 부끄러운 금실이다.”
<이 소설의 가치>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순례 씨 중심으로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들이고 그 중심에 순례 씨가 있다. 순례 씨의 열심히 사는 모습,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강한 가치관, 남을 배려하는 태도, 따뜻한 시선 등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한 모습들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이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순례 씨 손에서 자란 오수림은 그런 좋은 가치관과 태도를 습득하여 자신의 가족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형성하였다. 어린 나이에 집이 망했는데도 그 상황을 힘들어하기보다는 어떻게든지 이겨내려고 하고, 건강하고 씩씩한 생활 태도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무능력하고 배려 없는 가족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생활력 등이 배울만한다.
주인공과 순례 씨 및 그 주변 인물들 덕에 현실적이지 못하고 생활력 없는 1군들은 순례 주택에 들어와서 살면서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는 새벽에 식당에서 김밥집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자신이 번 돈을 세면서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고 아빠는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새벽 배송 일에 나서면서 현실적인 노동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미림과 아빠에게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자신의 가족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허물을 볼 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1군들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